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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수 교수의 교회사 클래스_ 콘트산티누스는 13번째 사도였는가
    Book_책 2022. 8. 11. 04:11

    • 개론
      • 콘스탄티누스는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1. 그는 하나님께서 교회 외적 문제를 감독하도록 임명하신 주교며 반면에 2. 교회와 국가를 혼합시킨 장본인이라고 평가받는다.
      • 그는 어디서 출생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272년부터 288년 사이 어느 해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의 집안은 3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군사 지배 계급에 속했다. 로마의 영토가 너무 커서 왕 한명이 다스리기에는 부족했고, 이에 따라 4명의 왕이 정제 (augustus)와 부제 (Caesar) 두 사람이 통치했다. 그의 아버지는 서로마의 정제인 막시미아누스 밑에서 부제가 되었고, 이때 아버지는 아내와 막시미아누스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그의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 어린 콘스탄티누스는 동로마의 정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정으로 보내져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로마의 정치권력은 매우 불안정했고, 그 와중에 그의 아버지는 서로마의 정제가 되었다가 곧 황제의 자리에서 축출된 뒤, 아디르 콘스탄티누스와 함께 잉글랜드로 북부지역으로 원정에 나서다가 에보라쿰에서 306년에 사망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병사들에 의해 후임 황제로 옹립되었고 312년 서로마의 정제였던 막센티우스를 물리쳐서 서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 리바룸
      • 그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을 하기 전날 밤에 꿈에서 “이것으로 정복하리라.”는 음성과 아울러 X 와 P를 겹쳐 쓴 문장을 보았다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의 처음 두 문자이다. 이것이 라바룸이라고 부른다. 그는 즉시 병사를 불러 막센티우스와 전쟁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3년 뒤에 새웠던 개선문 안에는 라바룸이 새겨져 있지 않다.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를 높이 쳐들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동상에는 “이 구원의 상징 덕분에 저는 당신의 도시를 폭군에게서 구했고, 원로원과 로마 국민에게 자유를 되돌려주었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 십자가 문양은 여러 해석과 억측을 낳았지만, 이 기적적인 승리로 인해 이제 십자가는 압제와 모욕의 상징이 아니라 승리와 명예의 기장이 되었다.
    • 밀라노칙령 (313년)
      • 콘스탄티누스는 정치적 현안과 통치권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리키니우스를 만났다. 회담의 성과가 ‘밀라노 칙령’ 이다. 칙령의 골자는 그리스도교의 대한 박해를 중단하고, 박해하던 시대에 몰수한 사유 및 공유 재산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로마인들에 의해 가해졌던 박해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 도나투스 논쟁
      •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을 지탱하는 새로운 기둥이 되어줄 것을 기대했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이것을 정치적 이념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로마의 속주국인 북 아프리카의 도나투스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그것은 도나투스주의자들이 이전에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교를 변절한 사람을 다시 교회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도나투스주의자들은 이 문제로 콘스탄티누스에게 호소했다. 313년부터 330년까지 이 문제의 대한 콘스탄티누스의 사견은 문서에 또렷이 드러나 있다. 그는 도나투스주의자들의 입장에 반대했다. 그가 우려했던 점은 교회가 분열되면 로마제국이 분열 될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교의 신이 로마제국과 콘스탄티누스 자신에게 징벌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아레이오스 논쟁
      •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레이오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온 것이 아니라 무로부터 만들어 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아들이 존재하지 않는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하나님과 유사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대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스는 아들은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나신 분이며, 시간 이전의 영원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갖고 계신다고 확신했다.
      •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리 생각했지만 사소한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것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보낸 편지는 이런 내용을 내포한다, “이러한 차이들의 기원과 기초에 대해 세심히 탐구를 해본 결과 짐은 그 원인이 정말 하찮은 성격의 것이며, 그렇게 강렬한 논쟁을 할 가치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콘스탄티누스는 주교들을 니케아로 불러들여, 역사적인 니케아공의회가 325년6월19일 황제 궁에서 개최했다. 니케아공의회에서 아타나시오스의 편을 들었다. 아들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낳아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로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 콘트산티노플 건설
      • 로마가 명목상 수도였지만 그 영향력을 잃어버린 이유로 그는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곳 위에 ‘비잔티움’에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고자 한다.
      • 콘스탄티누스는 새로운 수도를 세계으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예술품들을 옮기며, 공공건물들을 신축한다. 아폴로상
    • 과연 그리스도인이었는가
      • 친- 그리스도적 정책_ 교회 우호적인 법률 제정, 교회 성직자 후원, 예배당 건축
      • 비- 그리스도적인 관습 유지_ 점쟁이들에게 자문을 구함
      • 두시대, 두종교 과도기의 인물
      • 그의 잔인성_ 주 된 논란의 이유. 처남 처형, 조카 처형, 아들 처형.
      • 그는 언제 그리스도인?_ 이유, 죽기 직전 세례 이행. 허나, 시대적 관습
    •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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