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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Jesus (왜 예수인가?) - 조정민목사Book_책 2019. 2. 14. 14:16
Why Jesus (왜 예수인가)
조정민1강
새벽예배에 나가자, 결심해 보십시오. 새벽에 교회 못 나갈 일이 열가지도 더 생깁니다. 이때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때입니다. 이때야말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기뻐해야 합니다. 곁길로 가면 상관없다가 바른 길로 가려면 딴지를 걸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돈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 시작된 교회가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사람들을 율법에 묶고 종교에 묶어 버렸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로 안내하다가 함께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다들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가 어느 순간 예수님과 성경의 권위 위에 교회와 교황의 권위를 슬며시 포개 놓은 것을 개혁하려 한 운동입니다. 교회와 교황이 아니라 예수님께 돌아가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를 일방적으로 구원하기로,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기로 한 그분의 결정을 사실로 경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자기 감정과 기분에 따라서, 자기 논리로 경험에 따라서 하나님을 판단하게 됩니다.
종교적 시스템으로는 사회를 유토피아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
2강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가지 단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No mileage, No credit, No point.
우리가 찾아가는 천국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속으로 천국을 끌고 내려오셔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기 때문에 이생에서 천국에 갈 만한 마일리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셨습니다. No mileage, No credit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만일 천국이 일종의 마일리지 시스템으로 가는 곳이라면 우리는 지금부터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새벽기도하고, 열심이 헌신하고, 열심히 헌금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입국 비자 찍어 줄 테니 비행기타고 천국에 오라는데도 사람들은 굳이 수영해서 건너려 하고 비행기를 타서도 편안히 앉지 못하고 뭐라도 해야 한다며 뛰어다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적인 어떤 노력도 천국 가는 조건이 될 수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했을 때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은 사람은 대체로 하층민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노 마일리지 시스템”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은 “마일리지 시스템”에 길들여 있죠. 공부를 하건, 직장 생활을 하건 열심히 해서 이코노믹에서 비즈니스로 올라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갈수록 인생이 계층 상승을 위한 사다리 타기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새롭게 시작한 교회의 모형은 사실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정을 세상의 유일한 제도로 준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훼손되기 전, 죄짓기 전의 가정은 하나님의 형상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곧 하나님 나라이자 천국이었습니다.
3강 자유
사사기 이스라엘의 450년 역사를 기록한 책인데, 사사기에서 계속 반복되는 이슈 중 하나가 바로 ‘당시 왕이 없어서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인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포스트모더니즘은 세상에는 절대적인 기준도 절대적인 진리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가 진리이며 따라서 각자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대로 살면 된다고 말합니다.
인디언의 속담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5리를 걸어 보기 전까지 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어쩌면 우리는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생애를 살았다면 그 사람 처럼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설마 우리를 시기해서 금기를 두셨겠습니까? 부모는 아이가 먹어서는 안 될 약을 집 안에 두면서 절대로 먹지 말라고 아이에게 당부합니다. 해골 표시 같은 걸로 특별히 표시해서 절대 손도 대지 말라고 금합니다. 그리고 자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이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에 각별히 금지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이 특별한 금기를 자유를 속박하는 행위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을 주셨건만 우리는 차선을 탐냈습니다. 그 탐심은 쾌락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쾌락을 향한 탐심은 진정한 기쁨을 잃게 만들고 결국 중독의 덫으로 이끌고 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까닭은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와 의사에 따라, 본인의 선택과 결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최고의 사랑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우리의 프리덤은 Freedom to God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자유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경험할 때 우리는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풀려나게 됩니다.
4강 ‘Joy” 기쁨
이제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네 번째 기준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로 기쁨입니다. 기쁨은 영어로 ‘Joy’입니다. Joy를 ‘Jesus Overflows You’라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 하려합니다. 뜻을 풀이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찮은 기쁨에 만족하는 습관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기쁨의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기쁨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욕심 내고 갖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전혀 다른 차원의 기쁨을 제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미처 눈뜨지 못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요즘 무엇이 재미있습니까? 여러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기쁨과 다르지 않습니까? 기쁨의 기준이 바뀌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예수를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길을 나서 놓고 예수와 상관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크리스천이 지탄받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동일한 수준의 기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고 그 기쁨을 날마다 누리고 산다면 굳이 전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기쁨이 그들의 기쁨과 다르다는 걸 아는 순간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시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앞에서 나는 우리가 어떤 마일리지도 쌓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뻐하면 됩니다. 그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5강 Love and Power
왜 예수님은 당시 랍비들이라면 결코 제자로 삼지 않았을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부르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3년간 같이 먹고 자고 가르침을 받고 훈련받았지만 고난이 닥치자 도망친 제자들보다 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적어도 예수님이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나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솔선수범으로 가르쳤는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묶인 존재들입니다.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그날 성령이 강림하시자 이들에게 전혀 다른 삶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초대교회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항상 따라다니고, 가까이에서 배우고, 사랑한다고 고백했는데도 실패하던 사람들이 성령으 받고 나자 이전과 전혀 다른 행동과 결정과 대담성과 일관성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교회가 지난 2천 년 동안 생명력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인류의 역사는 BC와 AD로 구분되었고,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가 지금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교회의 원 뜻은 예수님이 불러낸 사람, 몸 값을 치르고 구원해 낸 사람, 구출해 낸 사람의 의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는데 죽었습니까?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따먹고 죽었습니가? 안 죽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뒤 가인도 낳고 아벨도 낳고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을까요? 선악과를 탐하므로 아담과 하와는 실제로 죽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기에 영적으로 이미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권력의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가셨습니다. 권력의 길이 곧 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길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가지 않았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볼 때는 얼토당토 않은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르고자 할 때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상향지향적인 세상에서 하향지향의 길을 걸으려 하니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이지요.
교회는 십자가 위에서 세워진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권력의지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들이 모인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권력의 길로 갈 수 있지만, 그럴 능력이 충분하지만, 그 길로부터 돌이켜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권력의지를 버리고 사랑의 길로, 들어오라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6강 죄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죄는 절대적 기준을 거부하고 나를 모든 것에 선행하는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과 악을 하는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떤 것과도 바른 관계를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이 된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서서히 고사하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죄인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고, 둘째 자기 죄 냄새를 못 맡고, 셋째 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넷째 서로 다투고 갈등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죄를 심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는 우리와 하나님을 분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떼어 놓은 뒤에는 사람들끼리도 이간질 시켜서 분열시킵니다. 서로 미워하고 저주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죄가 고루고루 스며들게 합니다.
성화의 과정을 살아가는 것이 곧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구원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구원 받았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성화의 과정에서 죄에 대해 민감해진 탓에 날마다 죄와 피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7장 은혜
예수님은 오로지 종교 지도자들과 사사건건 논쟁하고 부딪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교 세력 자체가 도적이요 강도였기 때문입니다. 말할 수 없이 부패했으면서 백성을 율법으로 굴레 쉬워 괴롭혔습니다.우리가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율법을 뛰어넘는 은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은혜를 끊임없이 공급받으면서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계속해서 받지 않으면 절대로 은혜로운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은혜를 받지 않는 사람은 은혜로운 신앙이 아니라 율법적인 종교 행위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종교 행위란 무엇입니까? 오늘은 1시간 채워서 기도해야지, 이 달에는 작정헌금을 얼마를 해야지..
율법으로 종교 생활을 했으니 받은 은혜가 없어서 고난이 오면 버틸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찾는 아빠는 나를 아무 조건 없이 품어 주십니다.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를 비는 순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좋으신 아빠입니다.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키시는 아빠입니다.
은혜는 아무 조건 없이 폭포수처럼 쏟아 붓는 것입니다. Grace is Give-Give, not Give-Take.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떠나면서 날마다 기억해야 할 단어는 그레이스입니다. 즉 은혜입니다.
God
Recharges
Again from the
Cross, under cross
Eternality.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은혜가 넘치면, 은혜가 오면, 은혜가 물밀듯이 벅차게 끓어오르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 순간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은혜는 어디서 옵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은혜의 수원지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은혜는 믿음이라는 수도관과 수도꼭지를 통해 들어와서 나를 차고 넘치게 하고 다시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8장 고난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고난을 만나고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 고난이든 고통이든 아픔이든 그것이 인생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면 그것 때문에 화가 나거나 억울하거나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고난의 의미가 해석되면 더 이상 고난이 두렵거나 피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살다 보면 겪게 되는 고난, 위기, 아픔을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 고비를 넘겨야 다음 순간을 충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고통은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생명이 선물이듯이 고통도 선물입니다. 고통은 생명이 생명되게 합니다.
9장 거듭남
거듭나면 더 이상 나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10강 제자 “세상의 리더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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